제4회 [장려] 지나가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10명이라도 ~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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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매달 장 주머니를 들고 경주 황성 시장에 나간다..
(장 주머니는 시장에 산 과일, 채소 등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주머니. 기부받은 천이나 못 입는 옷, 집에 돌아다니는 보자기, 양파망도 장 주머니가 될 수 있다)
북적이는 시장 골목 한쪽에 자리를 펴고 우리의 물건들을 펼치고, 조끼에 캠페인 문구를 주렁주렁 달고 시장을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우릴 보고 누군가는 각설이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래, 그래도 좋다! 봐주면 그걸로 좋다."
"오늘부터 비닐 없이 장 봐요! " 부끄럼은 사라지고 씩씩한 발걸음이 시장의 활기에 섞인다..
한때는 기부받은 천으로 장 주머니를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사람들이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으려고 할 때 나도 모르는 간절함과 용기로
냉큼 뛰어가서 "비닐봉지 대신, 이 장 주머니 사용해 보실래요?" 이야기하면
귀찮다고 손사래 치는 상인들, 뭐 사라고 하는 줄 알고 정색하는 손님들, 예쁜 장 주머니가 맘에 들어서 기쁘게 가져가는 이들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전해주었던 주머니가 다시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을 거라 믿었는데 보이지 않아서 실망했던 때도 있었다 할머니들 장롱 안에 있거나, 목욕갈 때 속옷 주머니로 쓰시는지 행방은 할 수 없지만, 물건이 어디서든 쓰임새를 다하길 바랄 수밖에.
그런 이유로 요즘은 장 주머니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며 방법만 알려준다. 집에 있는 주머니를 찾아보라고 하며, 만약에 꼭 필요할 때만 우리가 만든 주머니를 2천 원에 사갈 수 있게 한다.
직접 자르고 박고 끈 끼우고, 캠페인 문구 도장 찍고……. 시간과 노력이 든 장 주머니 가격이 2천 원이라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가치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만들어서 나눈다..
또 직접 장을 보며 스텐통에 사 온 두부, 미역, 생선 그리고 천 주머니에 담은 밤, 버섯, 사과까지 시장 상인들에게 이렇게 장보기 할 수 있다고 말 없는 캠페인을 한다..
신기하게도 주머니를 가져가면 주머니의 남는 여백이 미안해서인지 덤으로 채워주시는 상인들이 많다.
이럴 땐 정말 주머니 들고 갈 맛이 난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계속 캠페인을 하다 보니 두부가게, 버섯가게 등 단골이 생기면서
여기서 용기나 주머니를 체험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통을 가져오면 두부를 증정하는 이벤트)
나 역시 2년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니 어떤 계기든 이런 경험을 해보는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 열 명이라도 용기를 내시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증정 쿠폰도 만들고 큐알코드로 홍보도 했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많은 사람이 오진 않았다. 아쉽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처음에 잘 되는 경우가 없으니 그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앞으로 더 잘될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시장을 다녔던 추억이 내게도 남아 있다는데 그것과 다르게 요즘은 맨손으로 시장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나 편하게 사는 세상에 장바구니조차 시장에서 만나기 쉽지 않구나 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 나는 장바구니 들고 다닌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는 분을 만난다..
그 안에 겹겹이 쌓여가는 비닐봉지는 인식하지 못하시는 게 분명했다
장바구니 안에 반짝이는 검정, 하양 비닐봉지들은 여전히 익숙한 풍경이었다
비닐봉지를 받진 않으려 해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
재래시장에서 받지 않더라도 로컬매장, 친환경 물품이라도 마트에서는 포장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을 집에서 깨끗이 분리배출을 해도 쌓이는 비닐은 끝이 없다.
끝이 없는 비닐이 서랍 가득 채워졌을 때
가끔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 싶었다
버려도 다시 쌓이는 구조, 이건 개인의 몫이기 전에 사회의 몫이다..
소비자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우린 쓰고 버리는 시대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이 당연할까?
나도 너도 우리도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이는 것이 달라져서 생각이 변하는 걸까 생각이 변해서 보이는 게 다른 걸까 궁금했다
시장길에 서서 우린 "비닐봉지 없이 이렇게 장보기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들고 오면 썩지 않는 비닐봉지 1장이라도 줄 일 수 있어요."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내어 이야기하고 있다.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지나가시는 분 중에는 미안해서 못 쳐다보고 모른 척 가기도 하고,
허허 웃으며 " 다음에는 그렇게 할게요" " 맞아요 맞아"라고 맞장구를 쳐 주신다..
말을 건네지 않아도 보고 슬쩍 지나가더라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시장 나들이는 의미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10명이라도 ~
내가 믿고 있는 한 가지, 진심이 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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